오랜만에 얻은 평일 낮의 휴가.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을 누릴 방법을 고민하다가 생각난 것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기'였어요. '정처가 없다'곤 하나 동서남북 정도의 방향은 있어야 하기에, 내비게이션에 찍을 어딘가가 필요했어요. 일단 제가 운전을 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어야 했고,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어야 했는데 과천 미술관 정도가 제격이었죠. 그러니까 저에게 미술관은 작품을 보러 가기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떠돌아다니기 위한 목적지였던 거죠.
몸이 아플 때는 집에서 푹 쉬는 게 최고이지만, 몸이 허락해 준다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마음 휴식이 아닐까 생각해요. 특히 매일 8시간 넘게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직장인이라면 더욱더요. 미술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배가 고파지면 혼밥 하기에 좋은 곳을 찾아 밥을 먹고, 당이 떨어질라치면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 그 카페에서만 파는 시그니처 라떼를 마셨어요.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진짜 행복하다"
열심히 일하는 일상이 없었다면 이 시간이 온전한 휴식이 되지는 못했을 거예요. 특히 일을 하지 않는 공백기를 많이 겪어본 저로서는 그 점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죠. 미술의 '미'자도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미술관은 취업준비생 시절에 종종 찾은 곳이기도 했어요. 현실과 차단된 미술관 안에 있으면 '평생 백수로 살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죠. 미술관 안에 있는 내가 왠지 조금 우아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사람이 아닌 그림과 대화를 나누는 느낌도 좋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미술관 주변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 보면 하루가 훌쩍 흘러 있는 게 좋았어요. 그 시절에 표값과 밥값이 넉넉했더라면 더 많이 떠돌아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