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똑같은 산, 똑같은 코스를 걷는 제 모습이 누군가에겐 지루하게 비칠지도 모르겠지만, 의외로 큰 변화가 없는 환경에서 걷는 일은 영감을 얻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요. 여행과 같이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자극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걸을 때 '반짝이는 영감'을 얻는 반면, 익숙한 환경에서 걸을 때는 '숙성된 영감'을 얻거든요.
누구나 '생각'을 하며 살지만 그 생각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르죠. 저는 그 깊이의 차이가 '걷기'에서 비롯된다고 믿어요.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기만 하고 도저히 풀어낼 여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에겐 '걷는 여유'를 만드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엉켜 있던 실타래가 풀리듯, 땅에 한 발씩 발을 디딜 때마다 꼬여있던 생각들이 풀리면서 비로소 자기만의 답을 얻게 되니까요.
"니체는 자기가 쓴 책 속의 거의 모든 생각이 걷는 중에 떠올랐다고 고백했고, 리베카 솔닛은 걷기라는 행위가 인간에게 갖는 의미를 책으로 엮기도 했다. 그들은 걸으며 생각하고 걸으며 치유하고 걸으며 가능성을 얻었다. - 히조, <하지 않는 삶> 중에서"
그런데 왜 평지가 아닌 산에 오르냐고요? 과학적으로 설명은 불가하지만 저는 평지보다는 오르막이 주는 약간의 고통이 저를 더 깊이 생각하도록 채찍질해주는 것 같아요. 마치 난이도가 낮은 문제집만 풀 때는 몰랐던 내 실력을, 난이도가 높은 문제집을 풀 때 비로소 알게 되듯이 말이에요. 각자의 문제가 다르고 각자의 인생이 다르듯, 자기에게 맞는 오르막을 선택하면 되겠지요.
아마도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날까지 저는 계속해서 산길을 걸을 거예요. 어차피 내려올 산에 오르면서 그렇게 조금씩 저만의 숙성된 답을 찾아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