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해가 바뀌면 다이어리를 새로 구입하려고 하는 걸까요? 쓰는 용도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아마도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 때문임은 비슷할 거예요. 그 마음이 왠지 귀여워서, 기나긴 대기줄을 서서 기다리는 내내 짜증스럽지만은 않더라고요.
tvN <알쓸인잡> 프로그램에 출연한 법의학자 이호 교수는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건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인간은 희망 없이 일기를 쓰지 않으며, 나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즉 나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증거라고요.
저는 총 3가지의 기록 루틴을 갖고 있어요. 첫 번째 '오늘의 할일'을 기록합니다. 매일 아침 다이어리에 '오늘의 할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적어두어야 오늘 해야할 일을 잊어버리지 않고 모두 마무리 할 수 있거든요. 실제 종이와 펜을 이용해 기록하는 것은 이것뿐인 것 같네요. 두 번째는 '한 주간 한 일'을 기록하는 거예요. 지난 한 주간 기억에 남는 일을 엑셀 시트에 한 문장 정도로 간단하게 기록해두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바로 일글레를 쓰는 거예요. 일글레는 에세이이자 남들과 함께 읽는 저의 일기입니다. 3가지 기록 중 유일하게 저의 감정을 담아 쓴 글이자 타인에게 공개하고 있는 기록이죠.
이 3가지 기록은 각각의 용도는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호 교수님의 말씀처럼, 나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모두 불가능한 기록이었다는 것이죠.
'오늘의 할 일'은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기록이고, '한 주간 한 일'은 지난 한 주를 반성하고 다음 한 주를 더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기록이에요. 마지막으로 '일글레'는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기록입니다. 그래서 다른 기록과 달리, 가끔은 후회를 남기기도 하고 더 잘 쓰고 싶은 의지를 타오르게 만듭니다.
"일기는 생존에 도움이 돼요."
천문학자 심채경님이 하신 말씀인데요. 누구나 한 번쯤 힘든 시기를 겪는 순간들이 찾아오는데, 그 힘든 감정을 쏟아낼 방법으로 일기가 도움이 된다는 거죠.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덧붙이고 싶은데요. 바로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일글레처럼 '남들에게 공개하는 일기'를 써보시라는 것입니다. 남들에게 보여줄 글을 쓰면, 나 혼자만 보는 글을 쓸 때보다 훨씬 더 정제된 글을 쓰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익숙하지 않고 부끄러워서 약간의 '거짓'을 섞게 되기도 하지만, 조금씩 여기에 익숙해지다보면 복잡하고 추상적이었던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쏟아낸 글이 어둡고 엉망진창이더라도 상관 없습니다. 무엇을 쓰든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니 우리, 다이어리를 반도 채우지 못하더라도 너무 아쉬워 말아요. 중요한 건 다이어리를 얼마나 채우느냐가 아니라 여전히 내가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어하는 귀여운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