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끔 집에서 영화를 틀어놓고 집안일을 하거나 딴청을 피우고는 합니다. 그러다 영화가 끝나면 머릿속으로 '재밌네', '재미없네' 정도의 감상만 남고 쉽게 휘발되는 것 같아요. 반면, 영화관에서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지루하지만 티켓값이 아까워서 엔딩 크레딧까지 꾹 참고 본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인데요. 3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을 정도로 재미가 없었지만, 기억에도 무게가 있다면 이 영화는 제 머릿속에 무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집안일을 하거나 딴청을 피우며 본 영화는 재미없다고 느낀 이유조차 알 수 없지만, <오펜하이머>는 내가 왜 재미없게 느끼는지 최소한 3가지 이유를 들며 조목조목 이야기 할 수 있는 거죠.
시간이 갈수록 정보는 점점 더 많아지고 더 빠르게 변화합니다. 정보를 더 많이, 더 빠르게 습득하는 사람이 이기는 경쟁 사회에서, '요약'은 '실패'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기술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재미없는 영화를 보느라 시간을 버리는 실패를 피하기 위해, 재미없는 여행지에서 돈을 낭비하는 실패를 피하기 위해 누군가가 요약한 짤을 보고, 블로그 글을 검색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