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Vol.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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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돌아온 픽사의 28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를 보고 왔습니다. 코로나 이후 영화관에 갈 일이 많지 않았는데, 전편을 워낙 재미있게 봐서 기대감을 갖고 한걸음에 영화관으로 달려갔어요.
<인사이드 아웃>은 주인공 '라일리'의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 있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라는 다섯 감정들의 시점으로 라일리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영화인데요. 이번 <인사이드 아웃2>는 라일리가 사춘기를 맞아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이라는 새로운 감정들이 생겨나면서 일어나는 충돌을 다룹니다. 새롭게 생겨난 감정들 중에서도 이야기의 중심을 이끌어간 감정은, 바로 요상한 머리 스타일의 '불안'인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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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는 라일리가 하는 일들을 그르치는 주동자입니다. 언뜻보면 다른 감정들과 '불안'의 대립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불안이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불안이 또한 진심으로 라일리의 일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첫 발표를 맡은 전날 밤을 떠올려 볼까요? 친구들을 대표하여 발표를 맡게 되었다는 '기쁨'과 동시에, 발표를 망치면 안 된다는 '불안'에 휩싸였을 겁니다. 친구들 앞에서 멋지게 발표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지만, 자꾸만 발표를 망칠까 봐 걱정돼 잠을 설치고 맙니다. 다음 날, 잠을 못 자서인지 컨디션이 영 좋지 않고, 결국 발표 망친 뒤 무대에서 내려와 친구들 몰래 눈물을 훔칩니다.
어릴 땐 '불안'의 감정이 참 미웠던 것 같습니다. 불안해서 발표도 망치고, 시험도 망치고, 친구 관계도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성인이 되고나서 나름 '불안'이라는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알게 된 뒤, 꼭 불안한 감정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것은 아니란 걸 배웠어요. 불안하니까 한 번 더 발표 연습을 하고, 불안하니까 잘 아는 문제도 한 번 더 복습하고, 불안하니까 친구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눔으로써 일이 더 좋은 쪽으로 잘 해결되곤 했으니까요. 오히려 '불안'의 정도가 너무 낮으면, 부족한 준비성으로 인해 일을 그르치기도 하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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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불안'의 감정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라는 감정을 적절하게 다루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불안의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불안의 감정은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기도 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해일처럼 모든 감정을 휩쓸어 버리기도 해서, 저 역시도 불안의 감정에 한동안 짓눌리는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를 불안의 늪에서 꺼내준 건 글쓰기였습니다. 우리가 불안의 감정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비일관적이고 걷잡을 수 없이 갑작스럽게 커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 불안의 감정을 글로 써보면 사실 그리 큰 해일도, 돌풍도 아닌 겨우 두세 문장에 불과한 것이란 걸 알게 됩니다. '내가 겨우 이 두세 문장에 불과한 일 때문에 잠도 설치고 운 거야?'하며 손을 탈탈 털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힘을 갖게 해주죠.
만약 사춘기 시절에 글쓰기를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작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까칠하고 예민했던 저는 꽤 고약한 사춘기를 보냈거든요. 하지만 그 시절의 제가 밉지는 않아요. 그런 흑역사 하나쯤 품고 사는 것, 그리 나쁘지만은 않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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