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저의 책 <나답게 쓰는 날들>의 '제 이상형은요, 잘 쓰는 사람이요'라는 글에서 이상형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잘 쓴다'의 목적어는 '돈'이 아니라 '글'입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면 갖추고 있을 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는 사람이 이상형에 가깝다는 뜻입니다. (이상형 한번 참 어렵죠? 하하.)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상대방에게 거리낌 없이 잘 보여주는 사람 있잖아요. 작가가 글을 잘 쓰기 위해 끊임없이 독자에게 내가 쓴 글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것처럼, 감정을 마음속 깊이 숨기기보다는 다소 헤프게 보일지라도 상대방을 믿고, 있는 그대로의 속마음을 꺼내 보여주는 사람을 더 선호하는 거죠.
이와 같이 글을 쓰면서 설명하기 어렵고 애매한 것에 맞닥뜨렸을 때에는 다른 무언가에 빗대어 쓰면 훨씬 쉽고 편리해집니다. 사실 저는 이상형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는데요. (ex. 얼굴은 많이 안 보는데 스타일은 깔끔했으면 좋겠고 성격은 착하면 좋겠지만 자기 주관은 또렷했으면 좋겠고... 어쩌고 저쩌고 들어봤자 쓸데없는 이상형 얘기 주절주절...) 글을 잘 쓰는 사람에 빗대어 설명하니 아주 착착 잘 맞아떨어지더라고요. 실제 제 글을 예시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정말 세상이 빠르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계산대에는 로봇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어제의 비트코인이 오늘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소개팅은 삼세판이라고 한다(더 빨라졌을지도 모른다). 세 번 만나봐도 마음이 오지 않으면 인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나만 느리게 달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잠에 드는 날이 많다. 이럴 때일수록 천천히 들여다보고 기다려 주는 인내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한 게 아닐까. (생략)
마찬가지로 다 쓴 글도 다시 읽어보면 반드시 고칠 부분이 나온다. 고민하고, 들여다보고, 인내하면서 분명 더 나은 방향으로 고칠 방법이 떠오르게 되어 있다. 글도, 사람도 빠르게 쓴다고 잘 쓰는 것이 아니다.
- 유수진, <나답게 쓰는 날들> 중에서
위 문장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의 '인내심'에 빗대어 저의 이상형을 설명한 부분입니다. 완벽에 가까운 글을 썼다는 건, 여러 번 쓰고 고치는 퇴고 과정을 거쳤을 가능성이 높겠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노력을 하듯이, 관계에 있어서도 오랜 시간을 들여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 저의 이상형이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살피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 오랫동안 에세이를 써오면서 느낀 게 있다면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정 없이는 글을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대상은 때에 따라 '나'가 될 수도 있고, '너'와 '우리'가 될 수도 있다. 글에는 어떤 식으로든 글 쓰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생략)
사실 나는 지금도 거울을 보면 마음에 안 드는 것투성이고, 생각이 너무 많아 스스로를 괴롭히는 내 성격이 싫다. 그런데 2년 전 내가 쓴 글을 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못났다. 그럼에도 그런 못난 점들을 계속 글로 썼다는 건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나와 더 잘 지내고 싶다는 뜻이다. 글을 써왔기 때문에 더 나은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유수진, <나답게 쓰는 날들> 중에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예쁜 모습뿐만 아니라 미운 부분까지 감싸 안아줄 수 있다는 뜻일 거예요. 만약 제가 스스로를 증오하고 미워하기만 했다면 이렇게 오래도록 에세이를 쓰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부족하고 미운 부분을 글로 써 내려가며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었죠. 이처럼 누군가든, 자신이든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제 이상형이라는 뜻입니다.
어쩌다 보니 아무도 궁금하지 않았을 제 이상형에 대해 길게도 설명했는데요. 핵심은, 제 이상형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렵고 애매한 것에 대해 글을 쓸 때에는 다른 무언가에 빗대어 설명하면 쉽고 편리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상형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상형에 가까운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으로 대답하는 것도 좋지만, 이번에는 다른 무언가에 빗대어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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