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가지고 있는 강점이라곤 딱 하나, 글쓰기였습니다. 학점도그저 그랬고, 토익 시험 점수도 그저 그랬는데 그마저도 점수 인정 기한이 지나버렸죠. 사실 글쓰기도 잘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어요. 당시엔 브런치 작가도, 출간 작가도 아니었으며 이름난 대회에서 수상을 한 적도 없었으니까요. 그나마 글쓰기를 뽐낼 수 있는 기회는 자기소개서뿐이었는데, 고작 몇백 글자로 나를 다 표현하기엔 역부족이었죠.
하루는 별다른 기대 없이 IT기업의 채용 공고를 보다가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자격 요건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쓰여 있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홍보 담당자에게 글쓰기는 중요한 자격 요건이 맞지만, 당시만 해도 채용 공고에서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볼 일은 드물었거든요. 저는 해당 회사에서 내준 글쓰기 과제를 최선을 다해 작성해 제출했습니다.
며칠 후, 서류 합격 연락을 받고 면접을 다녀왔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봤을 법한 강남역의 가장 멋진 빌딩에서 말이죠. 이곳에서 면접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만큼 행복했어요. 면접을 보는 동안 심장이 터질 듯 긴장이 됐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어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제발 이곳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요.
면접 결과는 탈락. 그러면 그렇지. IT 관련 자격증 하나 없는 제가 합격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였기 때문에 대단히 실망스럽지도 않았습니다. 그 후 3개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취업 준비를 하고 있던 저는, 면접에서 탈락했던 그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시 면접을 볼 생각이 없냐고요. 무척 고민이 되었습니다. 최종 합격한 사람이 3개월도 안돼 도망갈 정도로 힘든 회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거든요.
밑져야 본전. 가진 것 없는 제가 한 번 더 면접을 보러 간다고 해서 잃을 건 없었습니다. 다시 강남역의 가장 멋진 빌딩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3개월 전에 봤던 면접관이 아닌, 당시 너무 바빠 면접장에 들어오지 못했던 대표님께서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3개월 전에 합격한 분은 IT 관련 능력이 출중한 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에 반해 저는 구글 시트도 다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그분을 채용하기로 한 거죠. 하지만 홍보 담당자로서 하는 업무의 대부분이 글쓰기이다 보니 먼저 합격한 분은 본인과 일이 잘 맞지 않다고 판단해 일을 그만두게 됐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면접을 보고 빌딩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 아마도 면접을 마치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대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함께 일해보자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