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청소 일을 하는 예지 씨를 신기하게 바라봤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 취직은 안 하느냐고 묻기도 했죠. 그녀도 처음에는 '직업 =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고 계속 해도 될까, 고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예지 씨에게 "일을 너 자체로 인식하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그후 예지 씨는 월, 수, 금은 청소 일을 하고 화, 목, 토는 일러스트 작업을 하며 조금씩 직업과 나를 분리하여 안정감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살 수는 없다."
몇 년 전,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을 때, 한 방송작가의 유튜브에서 주3회 쿠팡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는 걸 본 적이 있어요. 방송작가로서는 꽤 괜찮은 월급을 제안 받기도 했지만 주5일 내내 일을 하는 게 싫어 쿠팡 알바를 선택했고 그 삶이 만족스럽다고 했습니다. 쿠팡 알바라고 하면 여자가 하기엔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만 있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였어요. 당시 저는 복잡한 정신을 잠재워줄 노동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더욱 인상깊게 다가왔고, 놀면 뭐하겠나 싶은 마음으로 쿠팡 알바를 신청했습니다.
신청서를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알바 가능 여부를 빠르게 회신해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먼지를 뒤집어 쓰고 기계처럼 일을 하는 제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실제 쿠팡 알바 환경이 어떤지는 직접 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상상 속의 저는 어둡고, 고되고, 허름했어요. 어쩌면 20대 때, 여러 알바를 하며 겪었던 힘든 순간들이 실제 경험보다 더 부정적인 모습으로 떠올랐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저는 알바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쿠팡에서 받은 메시지도 곧바로 지웠습니다. 혹여 누가 볼까 싶어서요.
이처럼, 저는 사회가 말하는 성공적인 삶에서 벗어나면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겁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회생활을 해보니, 사회가 말하는 성공적인 삶은 그저 일반적인 삶에 불과했어요. 이 사실을 깨달은 후, 수많은 인파 속에 휩쓸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때마다 안도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해'와 '이렇게 살면 안 돼'가 공존한 거죠. 그런 저에게 "모두가 똑같이 살 수는 없다"는 말은 두 가지의 갈래길에서 새로운 답안을 제시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진짜 성공적인 삶은 내 삶을 나답게,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직업에 귀천은 없다'라는 말보다는 '모두가 똑같이 살 수는 없다'는 말이 본인에게 잘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예지 씨가 극심한 불안장애를 겪으면서도 남들 다 한다는 이유로 조직 생활을 꾸역꾸역 참아냈다면, 지금처럼 안정된 일상을 보내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평생에 걸쳐 경제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라는 것. 돈을 더 이상 벌지 않아도 되는 그날까지 잊지 않으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