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Vol.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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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년 반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내 이력서에는 6줄이 쌓였다. 이력서만 보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철새처럼 보이겠지만, 커리어 스토리로 보면 크게 1년, 3년 5개월, 2년, 그리고 현재 새로운 회사에서 2주일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철새라고만 보기는 어렵다(고 말해본다).
'취업 준비생'이라는 이름으로 공백 기간을 거치는 동안 여의도 빌딩 숲을 지나며 '저 큰 건물 안에 내가 앉을 작은 의자 하나 놓을 수 없다'는 사실에 버스에서 울었던 적이 있다. 어디서든 받아주시기만 하면 온몸 닳도록 일하겠다는 마음으로 중소기업, 스타트업, 비영리 재단 등 6곳의 회사에서 이력서 줄을 채웠다. 1줄을 만들기도 어렵다고 생각했던 내가 6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20대 때 편의점 캐셔, 영화관 매점 아르바이트 등 10가지 정도의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도 큰 몫을 했던 것 같다. 6곳의 회사를 거치며 겪어온 나의 이야기가 커리어를 고민하고 계신 분들께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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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기적으로는 너의 기준이 맞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나의 기준이 맞다
'공채'라는 이름에 꽂혀 들어간 회사가 있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내가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2013년에는 공채로 입사하는 것이 '있어 보이는' 정식 입사 절차 같은 것이었다. 경력을 쌓는 것이 절박했던 입장에서는 면접을 한 번만 보는 것이 더 좋은 것이었는데도 왠지 2번, 3번 보는 회사가 더 멋지고 좋아 보였다. 밤새워 취업 관련 인터넷 카페 글을 읽다 보면 공채 소식이 수두룩 빽빽이었고, 압박 면접에서 들었다는 충격적인 질문 문항을 보고는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공채로 들어간 회사에서 겨우 6개월을 일했다. 그때 몸도 마음도 정말 많이 다쳤다.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을 만큼 좋은 동료들을 만난 덕분에 그나마 6개월을 지낼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유리 멘털의 나는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했을 것이다. 그래도 6개월 동안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남들이 좋다는 게 꼭 나에게도 좋으라는 법은 없다는 것. 남들의 기준으로 회사를 선택하면 오래 다니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람도 오래도록 만나봐야 진짜 모습을 알게 되듯이, 회사도 들어가기 전에는 내게 잘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1줄, 2줄, 이력서의 줄이 늘어감에 따라 대략적으로 나의 직장 유형을 알아가게 된다. 저 회사를 가면 어떤 점은 잘 맞겠지만 또 어떤 점은 잘 맞지 않겠다, 라는 것이 아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100% 만족할 수는 없기에 결국 선택의 문제. 여전히 선택은 어렵고, 그 선택 하나로 커리어의 상당 부분이 결정되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서 '내 기준'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려고 노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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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꼭 버텨야 할 이유도 없고, 너무 쉽게 포기할 이유도 없다
연애는 여러 사람과 해보라고 하면서 왜 회사는 무조건 참으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시대에는 '평생직장'의 개념이었기 때문에 웬만한 부조리나 어려움은 참고 넘어가는 것이 맞는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회사 생활이 장난도 아니고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려면 인내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회사에 들어가 보니 일이나 근무환경이 나와 잘 맞지 않는데, 무작정 참으라는 주변 말만 믿고 인내하는 것이 답일까?
직장인 커뮤니티에 빈번하게 올라오는 글 중 하나가 '이직하고 싶다'는 글이다. 상사의 언어폭력, 임금체불, 잦은 야근, 본인과 맞지 않는 업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이직을 하고 싶지만 쉽사리 발을 떼기는 어렵다는 사연이다. 그럴 때에는 최대한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업무 환경을 둘러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직무나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기보다는, 당장 나와는 상관이 크게 없더라도 남들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돈을 버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015년 나의 성격과 잘 맞지 않았던 출판사 일을 그만두고, 나를 받아줄 새로운 회사와 직업을 찾아 나섰다. 어디든 들어갈 회사는 있겠지,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그 시간이 1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다. 내 인생 중 자존감이 가장 밑바닥을 쳤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던 IT회사의 PR 직무로 입사를 하게 되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취업 관련 커뮤니티를 자주 들락거린 것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삼성, LG와 같은 회사는 오르지도 못할 회사였지만, 그 회사의 채용 공고나 지원자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무의식적으로 나도 그러한 흐름에 빠져들고 취업 시장의 흐름을 읽게 되었다. 내가 입사한 회사는 소프트웨어 교육 회사였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라는 말만 보고도 겁을 먹었을 수도 있지만, 1년 간 취업 커뮤니티를 오가면서 익숙해진 덕분인지 '이 회사에 가면 세상의 흐름에 올라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여기까지만 보면 내가 두려움도 없고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 같아 보이겠지만, 나는 첫 적응에 몸살을 앓아 새로운 회사에 들어갈 때마다 유독 많이 힘들어했다. 사람들도 다 불친절한 것 같고, 나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고, 회사에 도움이 안 되어 잘리는 건 아닌가 하는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생각까지 스쳤다. '3개월만 버텨 봐'라는 말이 예전에는 폭력적으로만 들렸다. 내가 지금 당장 너무 힘들고 벅찬데, 3개월을 버텨보라는 말은 무책임한 말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매우 심각한 어떠한 문제가 있다면 굳이 3개월을 버틸 이유도 없지만, 단순히 첫 적응에 대한 몸살로 그만두고 싶은 거라면 3개월 정도는 유예기간을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3개월 지난 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컸다면 그때 덜 후회스러운 선택을 내려도 늦지 않다. 모든 일이 그렇듯 생각하기 나름인데, 이제는 3개월의 유예기간을 회사가 나와 함께 계속 일할 것인를 지켜보는 시간이라고만 보기보다는 나도 이 회사에 오래도록 다니기에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시간으로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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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디에 다니느냐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가를 생각한다
강남역 바로 앞 큰 건물로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출근할 때, 꽤 멋진 직장인으로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에 사원증을 메고, 회사에 찾아오신 기자 분께 '매니저'라고 적힌 내 명함을 전달할 때는 내가 이 회사의 주인이 된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3년을 일한 후, 마케터로서의 더 다양한 경험을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 한창 자신감이 치솟을 때였으니 더 크고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음은 당연지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약 3개월을 쉬는 동안 나는 의외로 몹시 큰 불안감을 느꼈다. 아침에 출근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고, 더 이상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타이틀이 없다는 게 슬펐다. 단지 잠시 쉬고 있을 뿐인데도 회사 밖의 내가 세상에서 도태되어 버리기 직전의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나 자신을 '직장인'이라는 틀에 가두고, 회사명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치부해버렸기 때문이다.
'회사'에 대한 고민이 '일'의 고민으로 확장하기 시작한 건, 나의 첫 책이 출간되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면서 조금씩 쓰기 시작한 글을 모아 책을 출간했고, 2019년에 '작가'라는 타이틀이 생겼다. 그만두면 없어질 회사명이 아닌, 나의 인생 동안 영원히 따라다닐 타이틀이자 스스로 만든 타이틀을 만든 것이다. 이때부터 '내가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인식하고 미래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회사 안에서도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더 하고 싶은 일들을 구체적으로 찾을 수 있고, 장기적으로 회사나 자신에게나 더 도움이 되는 방향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와 회사를 알리는 일에 자신이 있으니, 그러한 점을 더 살릴 수 있는 업무들을 찾고 제안해나갔다. 회사에서도 ‘저 사람은 글을 잘 쓰니 글 쓰는 업무를 맡겨야겠다’라고 인식이 생기면서 나만의 포지션이 생겼다. 리멤버라는 회사를 다닐 때에는 '스타트업으로 출근하는 마케터'라는 이름의 브런치 매거진을 만들어 회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다. 실제로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들 중 몇몇 분들이 이 매거진의 글을 보았다고 면접에서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내가 어디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오래도록 일하는 재미를 잃지 않고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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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6곳의 회사를 거쳐오는 동안 한 회사를 진득하게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가끔 그 친구가 부러웠다. 환경을 바꾼다는 건 생각보다 큰 에너지와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이상한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사람들의 말처럼, 인내가 부족한 탓을 '성장'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자기변명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스스로 증명도 했다. 내가 실제로 6년 반 동안 6곳의 회사를 거쳐오면서 어떤 성장을 이루어냈는지를 말이다. 실제로 성장 그래프를 그려오지 않았다면, 그 어떤 회사도 내가 6줄을 쌓도록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를 자주 바꾼다고 해서 꾸준함이 없는 것도 아니고, 회사를 바꾸지 않는다고 해서 욕심이 없는 사람도 아니다. 회사도 생활 방식 중 하나라, 자기에게 맞는 방식이 있는 것일 뿐이다. 회사를 자주 바꾸어온 사람이 앞으로도 계속 자주 바꾼다는 법도 없고, 한 곳의 회사만 다녔던 사람이 앞으로도 그 회사를 계속 다니라는 법도 없다.
그러니까 우리,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자. 꼭 버텨야만 한다고 썩은 지푸라기 잡지도 말고, 그렇다고 너무 쉽게 끈을 놓지도 말자. 몇 층짜리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라고만 생각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소중하고 미래 가치가 높은 선수들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도 어디에 다니느냐가 아니라 과연 다른 사람들보다 어떤 점에서 뛰어난 한 가지를 갖고 일을 하느냐를 생각하면서 회사에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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